
지금 이 시대에 예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보다, 예술가가 어떻게 살아남고 있는가를 먼저 묻는다.
지난 겨울, 내 모든 신념과 기반이 통째로 흔들렸다. 예술을 하면서 불안정한 경제상황으로 '나'를 위한 모든 우선순위를 회피하면서 유지해온 예술가라는 일은 그 무엇도 나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건 내가 믿었던 가장 큰 가치인 명예나 돈이 아닌 '연대'에 대한 절망. 그것은 더 이상 내가 지속할수 없을거라는 결론에 이르게 했다. 그러다가 우연적으로 선택한 일이 있다. 멸망 직전의 세상에서 '노아의 방주'가 있다면, 내가 마지막으로 택한 사람들과 망망대해로 떠나는 것. 예민하고 섬세한 이들이라 누군가와 갑자기 함께한다는 일이 갑작스러웠을테다. 그렇지만 나를 믿고 함께해주었다. 우리는 반년간의 대화를 통해 옆에 가만히 앉아 서로를 기다려주고 들어주었다. 내가 이 준비과정을 통해 삶을 견뎌냈다면 과하다 할까? 내가 믿어왔지만 절망했고 결국엔 포기했던 가치를 뛰어넘었다면. 결국 예술이 나를 지탱했다면, 그건 어떤 일이고 의미일까?
기획자로써 내가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작가들에 대한 공통점을 찾는 것이 나의 기획에 대한 숙제였다. 이들은 삶이 조각이 나도, 그런 채로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럼에도 자기의 예술을 지켜내고 있었다.
국가사업에 의존하는 예술기획에 포섭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략적이지 않다며 계속해서 그 기준을 강요당한다. 삶과 예술이 접목되어 누구보다 치열하게 태도를 고민하는 이들이 '담론 없이' 묶일수 없다면, 계속해서 예술가가 '거대 담론'에 삼켜져 삶보다 예술이 우선시되는 무책임한 생태계 안에 언제까지 던져져 있어야 하는가?
나는 아직도 내가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했다. 앞으로도 이 땅을 견뎌내는 일은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와 함께하는 일이 우리를 지탱했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관객이 전시에 대해 답을 내리기보다 지나온 삶의 궤적을 되돌아 봤음 한다. 누군가 또한 무너져 있다면 우리가 쌓은 방파제에 잠시 앉아있다가 일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허호

사진: 김재승 @3.4×10
작업의 시작은 빈 화면으로부터 출발한다. 텅 빈 화면 속에 어떤 선으로부터 시작할 것인가는 공간을 타고 흐르는 시선의 길을 따라간다. 최근의 작업은 사용했던 기법과 재료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쌓여 달리 사용할 수 있는지 몸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것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극복하는 방식보다는 힘의 균형을 생각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여전히 공간이 있었고 나는 그 지도를 통해 세상을 만지고 있다.

사진: 김재승 @3.4×10
나는 이번 <방파제> 전시에서 참여 작가들의 집을 방문하여 그들의 집을 미니어처로 제작하였다.
참여작가 고현종, 김안선, 김혜숙 작가는 사적인 공간을 열어주었고 그들의 공간 안으로 들어가며 작업은 시작되었다. 작업과 함께 놓인 방문기는 방문한 집에서의 실제이야기와 미니어쳐 집에서 인형놀이를 하듯 만들어진 가상의 이야기가 뒤섞인 이야기이다.